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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그녀가 곧, 전지현

※ 티브이데일리(선미경), 조이뉴스24(정명화/권혜림), 스포츠경향(백은하), 리빙앤조이(안진용), SBS E!(김지혜), 네이버매거진(김형석)의 인터뷰 기사를 종합한 것입니다. 


 '견우야~ 미안해~'라고 외치던 첫사랑 그녀가 '어마어마한 썅년'이라 내뱉는 유부녀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브라운관이든 스크린에 나와서 확연히 달라진 얼굴로 한결 같은 연기를 하는 여배우들은 많이 있다. 하지만 한결 같은 얼굴로 확 달라진 캐릭터를 연기하는 여배우는 드물다.

 <엽기적인 그녀>에서도 보았던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는 <베를린>에서 욘뵨 말을 내뱉으며 북에 아이를 두고 온 어머니 역할을 제대로 해 내는 드문 여배우.

 그녀가 곧 전지현이다.

 


 

<도둑들>의 '예니콜'로 전지현의 제2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뜨거운 반응은 예상했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10명의 도둑들마다 각자 매력이 있고, 더욱이 어마어마한 선배님들이 등장하시고…. 긴장되고 어려운 촬영이었다. 영화 자체가 어느 정도 흥행할 거라 생각은 했지만, '예니콜'에 대한 반응이 좋을 줄은 몰랐다. 그동안은 여성 캐릭터가 위주인 작품을 많이 하고, 판타지적인 요소도 많다보니 땅에 붙지 않은 역할이었던 것에 반해 예니콜은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캐릭터다. 욕도 좀 하면서…. 그런 모습들이 친근감있게 다가간 듯 하다.

 

대중들에게 전지현의 그런 변화는 반가웠다.

변화라기 보다는 몰랐던 것을 알았달까? 어릴 때는 아무 것도 모르니 마냥 조심스러웠다. 다칠까봐, 실수할까봐 걱정도 되고. 하지만 아직도 그러면 우습지 않을까? 아무래도 이제 현장에는 동생이 더 많으니까 자연스럽게 바뀐 것 같다. 데뷔 15년차가 유리벽이 깨질까봐 조심하는 것 웃긴 일이다. 언제까지 유리벽 안에 있을 순 없지 않은가. 이제는 몰랐던 것을 알았고, 당연한 변화다.

 

전지현의 연기인생에 <엽기적인 그녀>를 빼놓고 말할 수는 없을 것. 대단한 인기였다. 당시 스무살이었는데….

어린 시절, 한국 뿐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너무 많은 사랑을 받으며 활동을 했다.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면 끝이 없었던, 또 그로 인한 외로움도 끝이 없었을 시기였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스스로를 그다지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다 장난처럼 받아들였을 뿐. 그랬기 때문에, 그 인기가 전부 없어진다 해도 외롭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꼭대기에 있을 때도 이 모든 것이 사라진 후에 내려갈 바닥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혼자일 때에도 몇 년 간 작품을 하지 않을 때에도 더 바쁘게 지냈다.

 

그래서, 그 동안은 더 행복했나?

그렇다. 나는 일에 개인적인 행복을 두지 않는다. 물론 일에 대한 열정이 있고 좋은 시나리오를 보면 심장이 뛴다. 일은 분명 생활의 활력소가 되어준다. 하지만 목표를 이룬다고 해서, 10년 짜리 광고를 계약한다고 해서 행복해질까? 그렇지 않다. 내가 어떤 사람을 정말 사랑하고, 누군가가 진심으로 나를 아껴준다는 마음을 받을 때 행복한 거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나눠서 생각하는 습관이 들었던 것 같다.

 

습관?

드라마 <해피투게더>를 찍을 당시 정말 살인적인 스케줄이었다. 딱 하루를 쉬는데 내가 불안해서 어쩔 줄 모르겠더라.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내일 당장 일이 없어질 것 같고, '인기가 떨어지면 어쩌나, 나를 다 잊으면 어떻게 하나' 별별 생각이 들었다. 그 어린 나이에…. 이래선 안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일을 안 할 때에는 잘 쉬고 싶었고, 잘 살고 싶었던 거다. 그러다 보니 일과 생활을 더 철저하게 분리하는 버릇이 자연스레 생겼던 것 같다.

 

<엽기적인 그녀> 이후 다양한 작품에 도전했지만, 흥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잃어버린 10년'이라 표현하기도….

안타까웠다. 모든 배우가 '잘 될 거야'라는 생각으로 작품을 선택한다. 흥행이 되면 좋긴 하지만, 그렇다고 영화를 한 번만 하고 말 것도 아니니 계속해서 다음 작품을 찾았다. 예나 지금이나 내가 끌리는 작품, 좋아하는 캐릭터면 출연한다. 다만 <엽기적인 그녀>가 너무 큰 사랑을 받았기에 그것을 넘어서는 게 쉽지 않았다. 어떤 배우든 마찬가지겠지만, 나 역시 내 모든 작품이 소중하다. 누가 그렇게 차갑게 버려질 줄 알았겠나. 다 내가 좋아서 한 작품들이다.

 

작품에서 많이 드러나지 않다보니 '광고만 찍는 배우', '신비주의'라는 오해 아닌 오해도 많이 받았다.

그때는 그냥 '내가 아니니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광고만 찍을 건 아니니까. 사실 광고는 인기가 있으면 많이 찍고 그런 거라 그에 대해 굉장히 초연했다. 신비주의라는 단어는 어색하다. 그런 것은 없었다. 언론이나 매체에서 만들어낸 수식어일 뿐. 영화배우가 작품이 나올 때 관객들을 만날 기회가 인터뷰밖에 없다. 경력에 비해 다양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지 못한 점은 반성하고 있다. 보답하는 길은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도둑들> 얘기를 해 보자. 앞서 말한 대로 '어마어마한 선배님들'이 대거등장하는 작품이다. 그 안에서 존재감을 뽐내기란 쉽지 않았을 터.

뭘 더 하려고 하면 안 되더라. 특히 '나 여기 있어요' 식의 생각은 금물이다. 물론 처음에는 의욕이 충만하고, 뭔가 해야겠다는 욕심을 부리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모니터를 해보며 그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영화는 '도둑'이 아니라 '도둑들'이다. 어울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동료 배우들과의 연기 호흡은 어땠나?

일단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영화는 처음이라 굉장히 좋았다. 이런 현장은 어떤지 알고 싶기도 하고. 그런 마음이 먼저여서 그랬는지 몰라도, 다른 배우들과도 자연스레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워낙 예니콜이 말이 많다 보니, 여러 캐릭터와 부딪혔다. 그래서 예니콜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나갈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도 '관계'였다. 마카오 박과의 예니콜, 팹시와의 예니콜… 이런 식으로. 특히 김윤석 선배와는 '연기하는 맛이 이런 거구나' 느낄 만큼 호흡이 잘 맞았다. 사실 처음에는 '연기파 배우'라는 선입견이랄까? 조심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았는데, 이웃집 아저씨 같더라. 나를 무한 예뻐해주시고. 함께 찍었던 신에서는 너무 자유로웠다. 연기를 한다기 보다 대화를 한다는 느낌이었다. 극중에서 1:1로 연기한 건 단 한 장면이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해피엔딩 이즈 마인드'라는 신조를 말하는 예니콜의 모습도 마음에 들고.

 

<도둑들>은 약 4년 만의 충무로 컴백작이었다. 그리고 1년도 안 돼 <베를린> 개봉. 해외 활동에 주력하다 다시 한국 영화에 눈을 돌린 특별한 이유라도?

해외에서 오래 활동하다보니 국내 팬들은 '전지현이 오래 쉬었다'라고 생각하는데 난 끊임없이 활동 중이었다. 해외 활동은 그때가 아니면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많이 주력했던 것. <도둑들>이란 좋은 작품을 좋은 시기에 만나 하게 된 것이다. <베를린>도 분량은 적지만 너무 좋은 작품이라 해야겠다 싶었다.

 

<베를린>에서의 분량은 개인적으로 너무 아쉬웠다.

'련정희'는 영화 속 하나의 장치일 뿐이다. 내가 뒤늦게 합류하면서 추가된 부분도 있지만 중심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출연을 결심한 것은 류승완 감독과 작업하고 싶었기 때문. 전작인 <부당거래>도 굉장히 재미있게 봤고, <베를린>의 시나리오도 정말 좋았다. 본인의 색이 확고한 감독님이 나의 새로운 부분을 일궈주리라 믿었다.

 

어느덧 데뷔 15년차, 30대에 들어선 배우가 됐다.

막상 20대를 지나고 30대에 들어서니 뭔가 다른 건지 잘 모르겠더라. 다만 사회의 분위기라던가, 심지어 결혼까지 하니 뭔가 스스로 어른이 돼야 될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한다. 물론 실제로 크게 달라진 건 없을 수도 있지만, 스스로 부끄럽지 않다는 게 주변이나 환경으로 형성이 되더라. 나이가 들면서 연기하는 데 잇어 표현하는 폭이 넓어지고, 표현 방법도 성숙해질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베를린>에서 아이를 잃은 아픔을 드러내거나 '표종성'에게 붕대를 감아주는 장면 등이 불편하지 않고 자신감 있게 연기할 수 있었다.

 

유부녀 전지현은 아직도 낯설다. 집에서는 어떤 모습일까?

똑같다. 된장찌개 끓여서 같이 밥 먹고, TV보고…. 확실히 결혼이라는 것이 주는 안정감이 있는 것 같다. 든든한 마음. 한 가정을 꾸려나가고, 모든 선택과 판단을 직접하고 결과 역시 스스로 감당하게 되면서 진짜 나의 삶을 살아가는 기분이 든다.

 

'해피엔딩 이즈 마인'은 예니콜의 신조다. 인간 전지현의 앞으로의 꿈은?

여배우로서 시작한 이상, 끝까지 여배우로 남을 것이고… 중간에 일을 그만 둘 생각은 없다. 하지만 좋은 여배우를 떠나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도둑들>을 촬영하면서 선배들을 보며 그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다들 좋은 배우이기 전에 좋은 사람이더라. 삶의 여유에서 좋은 연기도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사람… 기준이 애매모호할 수 있지만, 삶의 균형이라 하겠다. 일도 가정도 나의 삶도 건강한 밸런스를 맞춰 사는 것. 적절한 밸런스를 이뤄나가면서 그것을 잘 유지해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